법을 위한 인공지능

2010년대 들어 인공지능이 우리 삶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그에 대한 제도적, 윤리적 쟁점들에 대한 고민이 우리 법학계와 실무에서 많이 이뤄졌다. 본지에도 소개됐던 AI의 지재권법상 발명자성에 관한 판결(2022구합89524)이 나오기도 했다. 이토록 파급력이 큰 신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예상되는 변화들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 즉 ‘인공지능을 위한 법’을 여러 각도에서 고민하는 것은 오늘날 법률가들의 중요한 역할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반대로 ‘법을 위한 인공지능’ 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ChatGPT로 대표되는 초거대 언어모델의 강력한 성능을 맞이하면서, 법률가의 일 중 적어도 일부는 언어모델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데 우리 법조계는 컨센서스를 이룬 것 같다. 법률 챗봇이 큰 주목을 받고 있고, 또 사법부에서도 인공지능을 활용한 재판 지원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초거대 언어모델이라는 신기술이 등장했으니 어떻게든 활용해야 한다는 접근보다는 이런 기술이 법률가를 대체하거나 조력할 수 있는 영역이 어느 부분인지를 우선 파악하고, 비용과 시간의 면에서 도입이 효과적인지를 면밀히 검토한뒤 신중하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언어모델은 일부 영역에서 경이로운 성능을 보여주지만 잘 수행하지 못하는 과제들도 많다. 이러한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나 ‘CoT(Chain-of-Thought)’ 등의 기술들이 함께 사용되나 이들 또한 각각이 가진 한계가 있다. 때문에 언어모델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할 때에는, 주어진 문제를 잘 분해해 그 구성부분들이 언어모델의 한계에 직면하지 않는 과제들인지 파악하는 역량이 중요하다. 법률 도메인에 대한 전문성과 언어모델의 기술적 특징들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필요한 작업이다.

또한 언어모델은 비싼 기술이다. 흔히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언어모델을 개발해 사용한다는 발상을 하지만, 많은 경우 ChatGPT를 사용하는 편이 오히려 더 저렴하다. 그렇기에 언어모델을 직접 개발해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면 해당 도메인의 특수성이든지, 정보 보안의 중요성이든지의 또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 이런 필요들이 있다고 해도, 우수한 언어모델의 개발은 엄청난 비용과 풍부한 경험을 가진 전문인력이 투입돼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다. 이 때문에 5년 이상 인공지능 개발을 업으로 하던 사람으로서, 내가 속한 곳의 누군가 “당장 우리도 법률 언어모델을 개발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면 선뜻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법률실무의 영역에서는 일반적인 인공지능 학계·산업계의 평가기준이 통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령 중국 법원에서 70% 이상의 정확도로 판결문을 자동작성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도입했다고 하지만, 70% 정확도의 법률문서는 (어떻게 측정했던 간에) 결코 공식적인 자리에 내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결과물을 제대로 평가하고, 또 현실적인 발전 가능성을 예측하려면 법률가들의 전문성에다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반드시 더해져야 한다. 즉 인공지능을 도입하든 도입하지 않든, 그 판단을 합리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법률가들이 인공지능 기술의 원리와 가능성, 그리고 한계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본고에서는 매주 법률 업무에 활용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 특히 언어모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법률 영역의 전문가들께 소개하고자 한다. 다만 깊고 수학적인 내용보다는 반드시 필요하고 직관적인 내용들이 중심이 될 것이다. 본고를 읽는 모든 분들이 인공지능을 잘 알고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부족한 필자에게도 큰 기쁨일 것이다.